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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상속으로

한국 며느리와 일본 시어머니.


아이를 출산하고 시어머니는  

한달간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후쿠오카에서 도쿄로 오셨다~

하지만
어느날 남편이 부엌에 들어가 설걷이를 딱~한번 도와준것을 본 시어머니는

본인은 한번도 부엌일을 시킨적 없다고 하시면서...

이때부터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신 것인지...

아니면 설걷이의 도움을 받은 내가 못마땅 했는지 

우리의 고부갈등은 여기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고 심지어는 아이 젖먹이는 것 조차 달가워하지 않았었다.

아이에게는 일본어로만 얘기하라고 했고, 

그런 나는 반박심으로 한국말만 썼다~

사사껀껀 잔소리는 물론 하나서부터 열까지 전부가 못마땅 하신 모양이였다.

시부모댁은 후쿠오카로 우리가 살고있는 도쿄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고향을 찾을때는 남편은 항상 호텔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우리가 후쿠오카로 가도 시댁에서 자는 일은 없었다~

남편은 막내로 위로 형이 하나 있는데 

형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며 뒤늦은 결혼 뒤에도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다.

물론 형과 결혼한 사람도 시부모님과 자연스럽게 함께 살게 되었다.

형님의 아내는 나와는 별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친하지 않아지만 예의 있고 차분한 성격의 사람 이였다.

그런 형님의 아내도 2~3년뒤에 고부갈등으로 끝내는 분가를 했다.


당시 아버님의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며 위독한 상항이였지만 

형님 내외는 그 넓은 집에 어머니만 홀로 남겨 두고 분가를 했고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지금까지도 시어머니는 혼자 그 집에서 살고계시다.

이 글은 그런 어머니를 이제와서 험담하려는건 아니다~

물론 작년까지만 해도 응어리져 있었던건 사실 이지만...

이제는 종교의 힘으로 모두 이해하고 용서하고 나 또한 반성했다.

엉킨 실타레를 풀고나니 

나도 결코 잘한것은 없었을테고 많이 부족했으며 이제는 어머니와 친해지고 싶고...

혼자 외롭겠다 싶어 안스럽기도 하다. 

이제는 나랑 전화할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해주어 마음이 찡~하고  또한 고맙기도 하다.

나이가 드시니 꽉 막혔던 문도 조금씩 열리고 있는듯 싶다~


어머님의 칭찬을 하자면 ~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학생 회장까지 지내셨으며 매사에 꼼꼼하셔서 

지금도 마을 노인 회관에서 회장직을 맡고 계시다.

60이 넘는 나이에 오토바이 면어증을 따셨고 

80이 다된 연세에도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계신다~

연말에 좋아하시는 히나코(교토 카스테라)를 보내드렸더니 

더 푸짐한 선물을 한아름 보내 주셨다~

조금 더 빨리 어머님과의 사이가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ㅠ

모든 미움을 내려 놓고 세상을 보니 덧없이 지나간 세월이 아쉽기만 하구나..!

내일은 어머님한테 안부 인사의 전화라도 드려야 할것같다~ 

그분이 외롭지 않도록....!